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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에게 준 사과(沙果 혹은 謝過)

칼럼

by 호남교육신문 2021. 10. 30.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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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동주∥ 前 영광교육장

영국의 물리학자이며, 천문학자, 수학자였던 뉴턴(Isaac Newton)은 1666년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사과와 지구 사이에는 서로 끄는 힘, ‘인력(引力)’이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우주의 모든 물체들 사이에는 서로의 질량을 곱한 것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 하는 인력이 작용한다고 하고 그 힘을 ‘만유인력’이라 했습니다. 이처럼 인류 역사상 물리학의 최대 성과라 할 수 있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계기는 한낱 떨어지는 사과에 불과했습니다. 사과가 인류 문명을 선도하는 촉매제가 된 것입니다. 

“진리는 망망대해와 같으며, 나는 고작 바닷가에서 조개를 주워 기뻐하는 아이일 뿐이다.”라던 뉴턴의 사과(Apple)는 참으로 위대한 사과였습니다.
  
13세기 중엽 스위스에는 빌헬름 텔(Wilhelm Tell)이란 석궁을 전문하는 사냥꾼이자 명사수가 살았습니다. 그는 아내와 두 아들과 같이 살며 매일 사냥을 하고 고기나 가죽을 팔아 하루하루 먹고 사는 평범한 사냥꾼이었습니다. 그러나 잔인한 귀족 헤르만 게슬러(Hermann Gessler)의 모자(帽子)에 부과된 경례를 하지 않아 체포된 그는 아들의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과녁으로 하는 생명을 건 사과 화살 쏘기로 내몰립니다.

자칫하면 아들을 죽이는 끔찍한 사고가 예견되는 절명의 위기에서도 침착하게 아들 머리 위의 사과를 명중시킵니다. 이처럼 빌헬름 텔의 사과(Apple)는 아들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극한(極限)의 사과(Apple)였습니다.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Alan M. Turing)은 여타 천재들처럼 사회성이 결여된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운 수학문제는 잘 풀었지만, 평범한 것은 잘하지 못했고, 글도 제대로 쓰지 못했으며, 말더듬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독일의 암호 체계 ‘에니그마(Enigma Machine)’를 해독한 것은 물론, 불침함(不侵艦)이라던 비스마르크호의 격침도 그의 암호 해독으로 가능했습니다. 최초의 컴퓨터 '콜로서스(Colossus)'를 만들었던 그는 동성애가 발각되자 1954년 6월 7일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베어 먹고는 영면했으니, 그의 나이 42세였습니다. 

일각에서는 1976년 스티브 잡스(Steve Jobs) 등에 의해 창설된 애플사의 로고가 앨런 튜닝의 사과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보면 세계 최대의 정보 통신회사 로고를 장식한 것은 불세출의 천재가 죽음의 길에서 한 입 베어 문 비정(非情)의 역사적 사과(Apple)였습니다.

2021년 10월 22일은 ‘개에게 사과 주는 날’입니다. 역사의 도도한 물줄기를 거역한 망언에 대한 사과를 개에게 줌으로써 국민 조롱을 넘어 결국은 국민을 개로 취급한 치욕의 날입니다. 우리는 지금,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모독하고 호남인들의 깨어있는 민주정신을 테러(Terror)한 막행막식(莫行莫食)의 어느 정치인을 목도하면서도 함께 살아야만 하는 지극히 불행한 국민입니다. “내가 그렇게 무섭습니까?”라고 큰소리치던 그 정치인이 전혀 무섭지는 않지만 매우 불쾌하고, 모욕적이어서 몸서리 칠 뿐입니다. 역겹고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역사학자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는 “인류에게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다는 데 있다.”고 일갈했습니다. 전두환의 폭압정치를 미화하고, 위장된 거짓 사과를 마지못해 하고, 개에게 사과를 주는 모습을 당당히 인스타그램(Instagram)에 올린 그의 역사관은 과연 무엇입니까? 우리나라 정치가 아무리 3류 정치판이라고 하지만, 개에게 사과를 주면서까지 자신의 사과(謝過)를 희화화(戱畵化)시킨 저의는 무엇입니까? ‘정치판은 개판’임을 증명하고 싶은 선구자적 희생정신의 발로였던가요?
 
그의 사과를 인류 문명을 바꾼 뉴턴의 위대한 사과와 견주는 것만으로도 죄악입니다. 그의 사과는 아들의 생사를 건 빌헬름 텔의 운명의 사과도 아니고, 천재 수학자를 요절시킨 역사적 사과도 아닙니다.

단지, 호남인을 멸시하는 조롱의 사과입니다. 악어의 눈물로 포장된 거짓의 사과입니다. 야누스(Janus)의 얼굴이 투영된 위선의 사과입니다. 민주화의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한 몰지각한 사과입니다. 5·18의 영혼을 두 번 죽이는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추잡한 사과입니다.  

이쯤해서 겸손, 경청, 포용으로 온 국민의 마음을 움직인 큰정치인 DJ를 소환하니, 그의 신실한 리더십 앞에 온통 자괴감만 충만합니다. 매일 밤 불같은 열병으로 모로 눕는 필자의 마음에 그 자괴감이 가슴앓이가 되어 한 겹 더 두터워지니 그저 세상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아! 등성이가 없어 모두가 평등하다는 무등산(無等山)이 자욱한 안개 속으로 사라집니다. 민주화의 성지에 혹한의 겨울이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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