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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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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남교육신문 2021. 3. 2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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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섬이었다. 개나리, 목련꽃이 만발한 4월 어느 날, 마을 앞 바다에 거대한 섬 하나가 떠밀려 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 일찍 들로 바다로 나갔던 사람들은 괴물체가 출현했다는 마을이장의 스피커 방송에 놀라, 하던 일을 멈추고 삼삼오오 부둣가로 모여들었다. 얼핏 보아도 근교에 점점이 박혀있는 무인도 크기 만한 섬 하나가 조류에 밀려 둥실둥실 떠밀려오고 있었으니 온 동네에 난리가 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부둣가에 모인 사람들은 시커멓게 밀려오는 괴물체에 대해 북한 잠수함이라느니 미군 항공모함이 뒤집혀 떠내려오고 있다느니 갖은 추측을 쏟아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공포와 호기심이 혼재하는 괴상한 물체에 쉽게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저 어서 밀물이 괴물체를 모래톱에 얹어놓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사실 그 일이 생길 즈음, 5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우리 마을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소문들 때문에 한바탕 홍역을 앓고 있었다. 지난 겨울에 태어난 범석이 동생이 밤낮없이 줄창 울어대는 이유가 얼마전 도회지로 시집갔다 자살한 순님이 누나의 귀신이 씌었기 때문이라느니, 결혼한 지 7년이 지나도록 아기가 없어 고생하던 복동이 아저씨가 고기잡이를 나가고 없던 새벽, 정신이 오락가락해 동네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곤 하던 광진이 형이 몰래 그 집 대문을 나오더라는 둥 하나같이 진원지 조차 알 수 없는 흉흉한 소문들뿐이었다.

무엇보다 동네 여인네들의 심사를 뒤틀리게 한 건 그 즈음 건너 마을에 새로 생긴 󰡐모정 다방󰡑이었다. 아가씨 둘을 데리고 외지에서 들어온 30대 후반의 마담은 한눈에 보아도 그리 녹록한 여자는 아니었다. 코 옆에 있는 새끼손톱 크기의 애교점과 색기가 줄줄 흐르는 두터운 입술, 눈웃음을 살살 치며 투박한 아저씨들의 가슴에 살포시 안기는 살가운 마담의 교태는 나무토막처럼 뻣뻣한 마누라만 끼고 살던 동네 아저씨들의 애간장을 다 녹이고도 남을 법했다.

고된 바닷일에 지친 아내들이 세상 모르게 곯아 떨어진 야밤에 마치 계를 하듯 패를 지어 몰려가는 남정네들 탓에 모정다방에는 언제나 우리 동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그런 정황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당시 우리 동네에는 때 아니게 커피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아줌마들을 대표해 모정다방을 염탐하고 온 광재 엄마는 남편들에게 커피 맛있게 타주는 법을 강의하는 촌극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삼삼오오 모여 건너마을로 향하는 아저씨들을 단속하기 위해 근무조를 편성해 불침번을 서기도 하고, 대표단을 만들어 마담과 담판을 시도하기까지 한 아낙네들의 결연한 의지는 높이 사줄 만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정다방 커피의 유혹은 늘 동네를 시끄럽게 했고 뭍에서 신참 아가씨가 새로 오는 날은 이른 새벽부터 아저씨들의 발길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바닷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부터 배가 아프다고 건너 마을로 넘어가 하루 왼종일 죽치고 앉아 있는 이가 있는가 하면, 불쑥 객지에서 학교 다니는 자식들에게 다녀오겠다고 며칠 전부터 핑계거리를 만들어 놓는 아저씨도 있었다. 또 새벽 일찍 혼자 바다에 나가 일하다가 곧바로 모정다방으로 퇴근하는 이가 속출할 정도였으니 신참 아가씨가 오는 날에는 동네에서 남정네들의 얼굴 보는 일이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웠다.

그러나 그렇게 새벽부터 부산을 떤다고 해서 모두 아가씨의 󰡐서방님󰡑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가씨의 호감도 50%, 마담의 지지도 40%, 기타 여건이 10% 정도였으니 마담의 입김이 상당히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마담의 입김에는 금전적인 것은 물론이요, 매일 매일의 출석점수도 포함되었으니 피곤한 몸에도 모정다방으로 밤마실을 가야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특히 서방님으로 낙점을 받은 아저씨는 한두 달 간은 온전히 그 우월적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었는데 그것이 마담의 묵인 아래 이뤄지는 은밀한 거래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독점 계약기간이 끝나면 아가씨는 비로소 󰡐자유계약󰡑 신분이 되어 다른 아저씨들의 품으로 건너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도 물론 합당한 조건이 따라주어야 했다. 지난번 서방님이었던 아저씨보다 나이가 어려야 함은 물론이고 그 중에서도 출석 점수와 마담의 지원이 필수조건이었던 탓이다. 그래서인지 그 동안 탁자 밑에서 오간 돈의 액수와 마담이 몸소 검증하기 마련인 나머지 10%의 능력(?)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이유로 모정다방은 아무래도 혈기방장한 젊은 삼사십대 아저씨들의 각축장이 됐고 삼십대가 먼저 모정다방을 선점하면 사십대조차 은근히 자리를 피해주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였다. 그런데 그런 삼사십대의 각축장에 돌연 오십대의 노년층이 불쑥 끼어 들어 전세를 역전시키는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그동안 조용히 판세를 관망해오던 오만이 아버지가 젊은치들의 방심을 틈다 목련처럼 우아한 미스 송을 선점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동네 아저씨들간의 분위기는 살풍경해졌고, 또 여자들은 여자들대로 서로간의 질투와 이간질이 극심해지기 시작했다.

범석이 동생의 유난스러운 울음 소리와 복동이 아저씨네 얘기도 그런 와중에서 자연스럽게 불거져 나온 험담일 가능성이 높았지만 마을 사람들간의 불신은 그런 험담마저도 진실로 둔갑시키고 있었다. 그런 흉흉한 인심을 비집고 목련꽃이 지기 시작하던 4월 중순, 돌연 거대한 섬 하나가 떠밀려 오고 있었던 것이다. 

삼삼오오 모인 동네 사람들이 한나절이나 기다렸을까? 

육안으로 뚜렷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그 거대한 물체는 다름 아닌 고래였다. 몸길이만 해도 약 30미터, 몸무게 수십 톤은 족히 될 법한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해안가로 떠밀려온 산더미만한 고래의 출현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 경악했다. 하지만 사태를 파악한 마을 사람들은 이윽고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이장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밧줄을 건 고래의 몸체를 끌어올리는 데만 한나절이 소요돼 사위가 어둑신해졌지만 화톳불을 지피고 거대한 고래를 옆자리에 모셔 두자 마을은 그때부터 알게 모르게 떠들썩한 잔치판으로 변해 있었다. 그 거대한 고래를 어떻게 각 가구별로 등분해 나눠가졌는지, 또 고래고기를 먹어 본 일이 없던 마을사람들이 어떤 요리를 해먹었는지 당시 일곱 살의 내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었다. 다만 머지않아 복동이네가 암갈색이 도는 고래의 정액이라 불리는 용연향을 먹은 후 그토록 소원하던 아이를 가졌다느니, 범석이 동생이 고래 육회를 먹더니 울음을 그쳤다는 이야기를 간간이 전해들을 수 있었다. 

믿을 수 있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래고기가 남자 몸에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실속없는 다방 나들이 대신 저녁 밥상을 찾아 집으로 곧장 들어가 버리는 아저씨들이 많아진 것도 그날 이후에 나타난 변화였다. 그래서인지 전에 없이 부부금실이 두터워진 섬마을에는 모처럼 화기애애한 난기류가 형성되었다. 그 동안 밖으로만 나돌던 가장들이 대게 찬밥 신세이기 마련이었던 모정다방보다는 따뜻한 구들과 토끼 같은 자식들이 기다리고 있는 가정의 소중함을 깨달았던 것이다. 

모정다방은 그 후 일년 넘게 계속된 우리 동네 사람들의 고래고기 잔치 때문에 문을 닫았고 얼마 후 오만이 아버지에 의해 횟집으로 개조되고 말았다. 고래고기의 󰡐약발󰡑을 입증이라도 하듯 이듬해 봄, 새로 태어난 우리동네 아이들이 물경 스무 명이 넘었다던가, 어쨌다던가.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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