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
전라남도함평교육지원청 교육장
며칠 전, 언론에서 어느 젊은 정치인의 글씨체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다. 정치인이 모처를 방문하면서 방명록에 남긴 친필 글씨체에 대한 논란이었다. 종편 방송의 뉴스가 가리키는 대로 그 글씨체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연륜이 있는 다른 정치인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름이 있었다.
생소한 장면에 이끌려 뉴스를 쫓았다. 종편방송 시사프로그램 출연진들은 글씨체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을 쏟아냈다. 여러 논의 중에서 컴퓨터의 등장과 디지털시대로의 변화가 그 글씨체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오랜 기간 교육 현장에 있었던 경험에 비춰 보면 한 사람의 필체는 어느 특정한 것에 의해 형성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가까운 친구나 선배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가장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초등학교의 선생님이 아닐까 짐작한다.
그 중에서도 글씨 쓰기를 처음 익히기 시작하는 저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영향이 클 것이라는 추측은 많은 사람이 함께 공감할 것이라 여겨진다. 어떻든, 정치인의 글씨체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의심돼 갑자기 소환된 컴퓨터는 우리 교육 현장에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났을까. 그리고 그것은 우리 교육과 학생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눈짐작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90년대 초·중반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배경에는 1987년부터 적용되기 시작한 제5차 교육과정 초등학교 4학년의 실과 교육과정 내용에 ‘컴퓨터와 일의 세계’의 등장이 있었다. 즈음하여, 학교에는 컴퓨터실이라는 특별실이 생겨났고 그 실은 도난 방지를 위한 굵직한 자물쇠와 방범창이 엄중하게 설치돼 특별한 도구가 등장했음을 웅변하고 있었다.
이어서 90년대 후반에 등장한 ICT 교육은 혁신이라고 일컬을 만큼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 교육은 우리나라가 디지털 시대에 세계의 중심으로 도약하는 데 크게 기여했음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혁명적 변화 속에는 천천히 뒤돌아보아야 할 일들이 있게 마련이다. 컴퓨터가 학교 현장에 등장하면서 생겨난 급격한 변화 중의 하나가 학습장 사용의 감소를 들 수 있다.
학습장 쓰기는 학생들이 공부한 내용을 자신의 언어로 정리하는 소중한 학습활동이다. 컴퓨터의 등장 전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교과별로 학습장을 사용하고, 매 시간마다 자신의 육필로 공간을 채우며 지식과 꿈을 키워갔다. 이러한 학생들의 직접 활동은 컴퓨터가 활자화한 내용으로 대체되고 학습자는 시각적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져 갔다.
학생들의 학습장 사용의 감소가 오늘날 어떤 현상으로 나타나는지, 그리고 먼 훗날 어떤 결과로 나타날 것인가는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고민해 보아야 할 또 하나는 기초 과학교육에서 직접 실험의 빈도가 약화 되지는 않았는가이다. 70~80년대에는 과학기술의 중요성과 함께 각급 학교에서 실험실습 중심의 과학수업이 매우 강조됐다.
학교마다 과학실을 별도로 설치하고 실에는 학급별 활용시간을 설정해 실험수업 여부를 확인하는 정도였으며, 하얀 가운을 입은 교사의 모습은 그 중요성의 상징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컴퓨터를 동반한 ICT교육이 등장하면서 직접 실험보다는 잘 정리된 영상자료가 대신하는 현상이 많아졌다.
알코올램프에 불을 붙이기 위해 성냥불을 켤 때는 가슴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켜야 한다는 가르침을 따라 했던 학생들의 서툰 몸짓은 컴퓨터 모니터 속의 영상으로 제작된 익숙한 동작으로 대체되지는 않았을까. 과연 우리 아이들은 성냥불을 켤 수는 있을까. 오래전부터 ‘클릭 수업’이라는 신조어가 생긴 것은 그냥 지나쳐도 되는 것일까. 기초 과학 교육의 중요성의 관점에서 이제라도 다시 한 번 되돌아보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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