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
청계북초등학교장
1982년, 지도동국민학교에서 교직을 시작했다. 신안군에서 유일하게 연륙이 되어 있던 지도라는 섬마을 학교였다. 당시 그 지역에는 지도중앙, 지도동, 지도북, 지도서, 백련 등 국민학교만 5교가 있었다.
중앙과 동서남북에 모두 학교가 있었던 셈이다. 내가 근무한 동국민학교는 몇 개의 리 단위 자연부락 안에 있던 학교였지만 학급당 40여명의 학생들로 12학급을 꽉 채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4년간 근무하고 다른 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그 학교를 방문할 기회가 없었다.
무심하게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끔 그 곳에서의 제자들이 소식을 전해주는 것으로 추억을 더듬곤 했다. 교육경력이 한아름씩 더해지고, 정년퇴직까지 남은 세월 수를 손가락으로 셀 수 있게 되면서 가끔 과거를 되돌아보았다. 그간에 근무했던 학교들을 차례로 떠올리다가 재미있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어? 북교에서만 근무하면 중앙·동·서·남·북. 모두를 근무하게 되는 거네?’
그 동안 근무한 학교는 교사로서 7교, 교감으로 1교, 교장으로 2교, 모두 10개 학교였다. 근무한 학교들을 학교명별로 구분해 보니 중앙초가 3교, 동초 1교, 서초 2교, 남초 1교, 그 외 지역명+초등학교 3교였다. 북초 근무만 빠진 셈이다.
‘남은 기간에 북초등학교에 근무할 기회가 있을까?’ 생각에 이르자 고개가 가로 저어졌다. 가능성이 매우 희박했다. 나에게 남은 교직 시간이 여유롭지 못하기도 하고, 현존하는 북초등학교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 때문이었다. 자료를 살펴보니 2022년 3월 현재 전남의 농어촌에 소재하는 동·서·남·북 초등학교는 동초 14교, 서초 11교, 남초 13교, 북초 8교로 모두 46교이다.
전체 초등학교 427교에 대비해 보면 동서남북 학교는 10.8%, 그 중 북초의 비율은 1.9%에 불과하다. 중앙초는 이름이 의미하는대로 그 지역의 군청 또는 면사무소 소재지에 위치한 학교이다. 반면에 동·서·남·북의 학교들은 지역의 중심에서 조금 벗어난 지역에 자리잡고 있다.(해남이나 고흥처럼 읍내의 대규모 중심 학교이면서도 동초라는 학교명을 가진 지역도 있다.)
90년대 초반까지 그런대로 적정한 규모를 유지하던 학교들이었으나 이후 급격한 학생 수 감소라는 위협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도시 지역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극심한 이농 현상이 농어촌의 인구를 급감하게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심각한 출생률 감소가 농어촌을 다시 한 번 강타했다. 그 파도가 가장 먼저 리 단위에 소재한 학교의 학생 수 감소로 이어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이치였다.
그에 따라 수많은 동서남북 학교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동·서·남·북 학교들이 겪은 어려움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수 년 전에는 학교명에 동·서·남·북을 사용하는 것은 일제의 잔재라는 논란이 있었다. 특정 도교육청에서는 학교명을 바꾸어야 한다는 정책을 펼쳐서 언론에 떠들썩하게 오르내렸다. 견해를 달리하는 학자들의 의견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학교의 졸업생들이 본의 아니게 모교명을 잃어버리는 것에 항의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지금은 그 논란이 잦아든 상태다.
고진감래라고 했던가. 여러 가지 어려움을 뚫고 동·서·남·북 작은 학교들에게도 희망의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작은 학교 살리기 정책이 자리를 잡아가고, 언제부턴가 학부모와 학생들이 학교를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무작정 대규모 학교, 다인수 학급을 선호하는 것에서 내 아이가 안전하게 사랑받으며 생활할 수 있는 학교를 찾는 학부모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우리 학교의 경우도 재학하는 학생 중 30%는 인근 읍내에 거주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을 지나면서 더해지고 이후에도 지속되리라 생각된다. 선생님의 따뜻한 눈길이 학생 개개인에게 전해지고, 학교의 모든 시스템이 온전하게 아이들 개개인의 행복한 학교 생활에 집중할 수 있는 학교가 이 시대에, 미래의 우리에게 꼭 필요한 학교가 아닐까.
40여년의 교직 생활을 마무리 할 시점이다. 오래전부터 마무리는 고향인 무안에서 해야겠다고 생각해 왔고, 중앙·동·서·남을 거쳐 2022년 3월 1일 운명처럼 청계북초등학교에 부임했다. 이곳에서 마흔 셋. 보석같은 아이들을 만났다. 반갑다. 참 예쁘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가슴이 뛰고 머릿속이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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