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청계북초등학교장
연말이다. 학교마다 2023학년도 교육계획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다. 학교에서는 연중 가장 중요한 업무이다. 우리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이를 실행하려면 우선 계획서가 작성되고 결재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시작부터 논의할 문제가 생겼다. 계획서의 제목을 어떻게 할 것인가. ‘2023 학교교육계획 수립’, ‘2023 학교교육과정 수립 계획’, ‘2023 학교교육과정 편성 계획’ 등의 제목들이 거론되었다. 잠깐의 논의 끝에 우리 학교는 맨 나중의 제목을 택했다. 초·중등교육법 제23조 1항에는 ‘학교는 교육과정을 운영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고, 동법 동조 2항에 의하여 교육부에서 고시한 2015 교육과정에는 ‘학교는 학교교육과정을 편성·운영한다’고 명기되어 있다.
‘제목이야 어떻게 한들 어떤가? 의미가 통하면 되지.’ 라고 넉넉하게 생각한다면 굳이 고민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학교에서 1년간 학생들을 교육할 내용과 방법을 계획하는 일을 어떻게 칭할 것인지는 분명해야 하지 않을까. 명칭이 명료하게 정의되고 공유되어야 그 일이 분명해지고, 그 일을 행하는 사람도 전문성을 확보하게 된다. 명칭이 명료하지 않으면 사람마다 해석을 달리하게 되고 그 결과물은 산만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리 사회에서 전문가, 전문직으로 칭하는 직업군이 있다. 각 직업군에서는 나름의 전문성을 역설하고 그렇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다. 전문직, 전문가로 인정되기 위한 여러 가지 요건 중에 해당 분야의 전문적 용어 사용은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하기에 사람들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전문용어로~~’라는 표현을 하곤 한다. 학교교육과정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 최고의 권위자는 학교의 교원이고, 교원이어야 한다. 학교교육과정에 관한 사항을 의사, 변호사에게 물을 수는 없지 않은가.
교육부에서는 지난 11월 9일, 2022 초중등교육과정 개정(안)을 행정예고하고 11월 29일까지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개정안의 목차를 살펴보는 가운데 우려되는 용어 사용을 발견하였다. 문서의 Ⅱ장이 ‘Ⅱ. 학교 교육과정 설계와 운영’으로 되어 있고, 그 하위에 ‘1. 설계의 원칙’, ‘2. 교수·학습’, ‘3. 평가’, ‘4. 모든 학생을 위한 교육기회의 제공’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에 처음으로 ‘학교교육과정 설계’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이다. ‘2022 교육과정 적용부터는 학교 교육과정 설계라는 용어를 사용해야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동일 문서의 Ⅲ장을 들여다보면서 혼란이 왔다. ‘Ⅲ. 학교급별 교육과정 편성·운영의 기준’으로 되어 있고, 그 하위에 ‘1. 기본사항’, ‘2. 초등학교’, ‘3. 중학교’, ‘4. 고등학교’, ‘5. 특수학교’로 구성되어 있었다. 현행 2015 교육과정에서 사용하는 용어 그대로 ‘학교에서는 교육과정을 편성·운영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2022 개정교육과정에 적용되는 시점부터는 ‘학교교육과정 설계일까?’ ‘학교교육과정 편성일까?’ 아니면 둘 다 통용되는 것일까. 학교교육과정을 계획해야 하는 교원들은 그 일을 하면서 용어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설계와 편성은 어떻게 다를까. 설계와 편성이 다르다면 어디까지가 설계이고 어디부터가 편성일까. 굳이 편성이라는 용어를 구분해 사용해야 할까. 이런 저런 의문들이 생기는 것은 나만의 불필요한 고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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