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관∥칼럼니스트·본지 논설위원
“애매한 상황으로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법정에 선 어느 여자 피고인. 수사를 맡은 검사가 자세히 보니 자신이 어려운 학창시절에 자신을 극진하게 보살펴준 스승님이 아닌가. 틀림없이 선생님은 살인자가 아닐 것이라는 확신으로 수사에 임해 끝내 선생님을 무죄로 이끌어준 제자 검사와 여교사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해방 전부터 공연되던 ‘검사와 여선생’의 대략 줄거리이다.
기가 막힌 인생 애환을 담은 이 극은 당시의 많은 민중에게 심금(心琴)을 울려주었고 아직도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아련한 향수처럼 자리한다. 어린 시절, 이 극을 보면서 한 소년이 동경 어린 눈빛으로 그려본 검사에 대한 이미지(image)는 그것이 전부였다.
1989년. 진통 끝에 ‘전국교직원 노동조합(전교조)’이 발족하게 된다. 정부나 정치권의 혁신정책에 대한 반항도 아니었으며 단지 교단에서 일어나는 부패와 부조리를 제거하자는 바람이었고 진정으로 학생들을 위하는 참교육으로 가자는 제안을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순수한 마음으로 교육혁신을 외친 교사들 1,500여 명을 ‘불법집단’이라는 기상천외한 명분으로 가차 없이 해직시켜 버린 것이 대한민국의 법조계다.
2022년. 공무원인 검사들이 검사장을 비롯한 부장검사 심지어는 평검사들까지 불법으로 모여 정부나 국회에서 내놓은 ‘검수완박’에 대한 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반대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교사’와 ‘검사’ 여러 가지 역할과 사명이 명확히 다르지만 같은 점이 있다면 둘 다 공무원이다는 공통점인데 하나는 별 볼 일 없는 공무원이고, 하나는 아주 잘 나가는 공무원이라는 점이다.
한쪽은 학생들을 잘 가르쳐서 올바르게 성장시키는 사람을 유능한 사람이라고 칭찬하고, 다른 한쪽은 범죄자들을 노련하게 윽박지르거나 증거를 잘 찾아내 감옥으로 가게 만드는 사람을 유능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한술 더 떠서 ‘없는 죄를 있는 것으로 만들어내는 사람’은 더 훌륭한 사람으로 대접받는 집단이다.
세월이 많이 흐른 탓일까? 아니면 필자가 편협한 탓일까? ‘검사와 여선생’에 나오는 검사의 인간애와 사명감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진정으로 법이 추구해 가야 할 ‘인권의 신장’이나 ‘약자에 대한 배려’는 전혀 고민하지 않고 오직 자기네 조직의 안위와 기득권 유지에만 안달인 그들의 모습이 추잡하다 못해 혐오스럽다.
국민에게 선택받은 최고의 지도자인 대통령도 자기 마음대로 국정을 다루지 못한다. 하물며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검사들이 대통령을 좌지우지하려는 태도는 도무지 용납하기 어렵다. 누구에게도 제재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자신들의 권한만을 주장하는 그들. 그러한 막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이고 그것이 바로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안하무인(眼下無人)의 행동이 몸에 밴 그들은 그동안 누려왔던 달콤한 권력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자정(自淨)을 기대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겨놓은 꼴이다. 그들의 자정 능력은 이미 상실되어 버렸고 이제 남은 것은 오직 ‘하이에나식’ 생존방식으로 세상을 향해 덤비는 것뿐이다.
이번 검사들이 벌인 행동은 30여 년 전 전교조 교사들이 벌인 행동과 똑같은 사안으로 불 수 있다. 물론 내용과 형식에서는 다소의 차이가 있겠지만 단체로 행동하고 주장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행위다. 그런데 인간계(人間界)에서 살아가는 교사들은 무거운 심판을 받아야 하고, 신계(神界)에서 살아가는 검사들에게는 누구 하나 지적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으니 어찌 이것을 ‘공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으며 ‘상식’이라고 말할 수 있으랴.
전교조가 탄생하기 전인 1980년대 이전에는 교장이 학교에서 황제나 마찬가지였던 시대가 있었다. 그런 옳지 못한 관행이 전교조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사라졌듯이 검찰의 무소불위도 ‘검수완박’이라는 시대적 대세에 눌려 없어지는 것이 역사의 순리다.
독재 사회는 권력을 한곳에 집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지만 민주사회는 권력을 분산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인 방안이 된다. 막강한 권력에 의해 한사람이라도 피해를 보거나 두려움을 당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권력이 권력자들에 의해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시대는 끝났다. 권력은 국민에게서 부여받아야지만 진정으로 권력의 기능을 행사할 수 있다.
무서운 공룡처럼 커져서 통제 불가능하게 된 대한민국의 검찰조직을 이제는 해체하거나 대폭 축소해야만 할 시점이다. 70년 이상을 국민 위에 군림해온 검찰이 이처럼 거대 공룡집단으로 둔갑하는 데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검찰이 무서워서 국민이 먼저 엎드려 주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기도 하다.
국민들이 ‘영감님(令監)’하고 부르면서 엎드려 칼자루를 갖다가 받쳤는데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올 줄이야. 하지만 이제 더는 검찰이 휘 두 린 칼에 겁먹지 말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칼자루를 과감하게 회수해야 한다. 준엄한 ‘국민의 명령’으로 말이다.
“신계(?)에서 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 검사들을 인간계로 다시 소환해 함께 놀아주는 것이 ‘법보다 양심’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들의 아량이요 도리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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